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
보나파르트는 성이며 나폴레옹이 이름이다.
나폴레옹의 생애
나폴레옹은 1769년 8월 15일 코르시카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의 집안은 이탈리아 혈통이지만 코르시카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나폴레옹의 가문은 프랑스로 전향해 보나파르트 가문이 된다.
그는 사관학교로 보내졌다. 나폴레옹은 사관학교에서 코르시카 사투리를 쓰는 촌뜨기로 놀림감이었다. 유일하게 동기생인 브리엔과 친하게 지냈다. 훗날에 브리엔은 나폴레옹의 부관이 된다. 사관학교에서 많은 수모를 당하지만 나폴레옹은 끈기 있게 인내하고 자라난다.
나폴레옹이 주목받기 시작한 일화
유년학교 재학시절 폭설이 내렸다. 학생들은 두 편으로 갈려 눈싸움을 하게 된다. 나폴레옹 편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지금 상황이 긴박하니 내가 우리 편을 지휘 하겠다.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눈덩이를 뭉치기만 하고 나머지는 눈덩이를 던지기만 하라. 내가 가리키는 쪽을 집중적으로 공격해라." 하며 지휘를 했다. 결과적으로 적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두었다.
나폴레옹의 학업 성적은 졸업석차로 볼 때 58명 중 42등으로 형편없지만 이 성적은 나폴레옹이 1학년 때 3학년들과 경쟁한 성적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은 학교생활 중 아버지 샤를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막대한 부채와 가장의 역할을 해야했다. 이 상황에서 1학년이 3년 과정을 모두 마스터하고 시험을 통과해 졸업한 것이다.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은 1785년 16세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4년 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다. 나폴레옹은 곧바로 휴직 후 코르시카로 귀향하여 의용병대대의 장이 되었다. 의용병대의 대대장이 되면서 이 당시 나폴레옹의 계급은 중령이 되었다.
나폴레옹의 첫 출전
첫 출전은 나폴레옹이 얼마나 성숙하지 못했는가를 보여준다. 1792년 2월 혁명 이후 정부로부터 교회에 대한 재산몰수가 진행되었다. 코르시카섬과 나폴레옹의 의용병대에게도 수도원 해산 지시가 내려갔다. 이에 아직시오 수도원에서 반대하는 지역일꾼과 병사들 간의 마찰이 생겼다. 그러던 중 오발사고로 인해 부하 소위가 죽었다. 이에 분노한 나폴레옹은 프랑스 정규균에게 지원과 탄약증원을 요청하였으나 지휘관인 마이야르 중령이 요청을 거절하고 해산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명령을 무시하고 다음날 아침 교회에 쳐들어가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의용병대는 나폴레오의 통제에 벗어나 상점과 축가를 털며 약탈과 파괴 도적질을 했다. 이 사건으로 코르시카의 파올리에게 반감을 사게 된다.
장군 진급
툴롱 포위전에서 나폴레옹은 영관급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전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했다. 첫 전투에서는 해안가에 분산된 반혁명 연합군 방어선의 약점을 각파해 포병대를 해안에 전진배치하여 연합군 함대를 봉쇄하였다.
첫 번째 사령관 두 번째 사령관 모두 군사적 재능은 꽝이었다. 첫 번째는 나폴레옹의 내부 신고로 두 번째는 질병을 이유로 사임했다. 세 번째 사령관 뒤고미에 장군으로 직업군인이었다. 나폴레옹의 능력을 인정하고 파리의 혁명정부에 추천서를 보내주어 나폴레옹은 사실상 지휘관이 된다. 지휘관으로써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어 그는 고속으로 승진하게 된다.
이후 나폴레옹은 툴롱을 점령한다. 연영국 해군은 대부분 도망갔으나, 영국 육군과 스페인, 이탈리아군의 대부분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러한 대승에 큰 기여가 있었으므로 그는 장군으로 진급하게 된다.
1799냔 쿠데타
나폴레옹은 시에예스와 손을 잡고 1799년 11월 9일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뒤엎고 3명의 통령에 의한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다. 나폴레응은 제1통령을 맡았다.
당시 프랑스는 1년마다 정권이 바뀔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에 영웅의 출현을 기다렸고 나폴레옹 중심의 새 정부는 큰 인기를 끌어 종신 통령에 취임했다.
나폴레오은 마렝고 전투를 통해 오스트리아를 격파했다. 이러한 승리를 바탕으로 루네빌 조약과 아미앵 조약을 맺었다. 이후 일시적인 평화를 되찾았고 나폴레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1804년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교황에게 대관받아 나폴레옹 1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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