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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덩샤오핑 그는 누구인가?

덩샤오핑 그는 누구인가?

 

덩샤오핑 (邓小平) 1904년 8월 22일~ 1997년 2월 19일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3대 최고지도자이다.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었다. 1981~1989년까지는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역임했다.

 

덩샤오핑의 생애

 

1904년 청나라 쓰촨성 광안의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 덩원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공자보다 좋은 사람이 되길 원했고 이름을 선성으로 지어주었다. 아버지는 마을의 지주였고 덩샤오핑은 먹고살 걱정은 없었다. 덩샤오핑은 풍요로운 환경덕인지 낙관주의라도 성장했고 모든 일을 좋은 방향으로 생각했으며 친구들과도 퍽 잘 어울렸다. 그 특유의 낙관주의 성격으로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잘 견뎌냈다. 또한 원만한 성격 때문에 공산당 내에서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

 

덩샤오핑의 고향 충칭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1926년 소련에 유학을 가서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중산 대학교 정치학을 배웠다. 소련 유학시절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었으며 1927년 중국으로 귀국하였다.

 

덩샤오핑은 3번 결혼을 했다. 첫 번째 아내는 장 시유안으로 소련에 있을 때 같이 공부한 동료이다. 장 시유안은 아이를 낳은 뒤 24살에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아내는 진웨이잉으로 1933년 그가 정치적인 공격을 받을 때 그를 떠났다. 세 번째 아내는 줘린으로 윈난성의 실업가의 딸이다. 그녀는 1938년에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다. 그들은 2남 3녀 5명의 자식을 두었다.

 

박해와 복귀

마오쩌둥이 위기의식을 느껴 문화 대혁명을 일으켰다. 덩샤오핑은 실각하여 당직에서 은퇴당했다. 그는 숙청당했다가 복귀하고 숙청당했다가 복귀하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오뚝이 또는 부도옹이라는 별명을 지었다.

문화 대혁명문화 대혁명 시기 그는 큰 고초를 겪었는데 바로 큰아들 덩푸팡이 홍위병에 쫓겨 베이징대학교에서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인 지체장애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오쩌둥에 사적인 원한을 품지 않았고 훗날 마오쩌둥을 평가할 때 '공이  7이요 과는 3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문화 대혁명을 겪어 힘들어하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마오쩌둥이라는 영웅을 만들어 그들을 위로했으며 그로 인해 현재까지 사람들 마오쩌둥을 좋아하게 되었다.

 

덩샤오핑의 업적

 

그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단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중국이 오늘날처럼 발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인물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체제란 낯선 단어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주장했다.

 

흑묘백묘론

“不管黑猫白猫,能捉到老鼠就是好猫”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흑묘백묘론이란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문화 대혁명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을 위해 그들은 먹여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체제를 도입하던지 상관없다고 말하는 이론이다.

 

또한 이를 뒷받침 하는 이론으로

선부론이 있다.

 

선부론

부유할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져라. 모두가 거지라면 모두 죽겠지만 일부가 부여해지면 그 일부가 사치를 할 것이고 사회를 이끌어 갈 것이다. 이로 인해 낙수효과를 기대했고 실제 중국은 엄청난 발전을 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성장으로 인해 오는 후유증은 중국 현대 사회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중국 현대 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바로 선부론 덕에 빈부격차가 발생했고 개혁개방 이후 빈부격차는 나날이 심해졌다. 이로 인해 베이징에서는 3명에서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에 작은 방을 빌려도 60만 원 상당의 월세를 내야 하지만 중국 변방 지역으로 가면 60만 원이면 월세에 한 달 밥값을 지불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 당시 선부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선부론의 반대 이론

잡초론

잡초론은 마오쩌둥이 문화 대혁명 시기에 주장한 이론으로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다. 즉 죽더라도 다 같이 죽고 살더라도 다 같이 살자라는 말인데 이 이론 덕분에 중국은 다 죽을뻔했다. 필자는 마오쩌둥이 병으로 안 죽고 10년 정도만 더 집권했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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