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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업적과 죽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업적

알렉산드로스 3세는 필리포스의 왕위를 계승했다. 왕위에 오른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인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운 마케도니아 왕국의 대왕이 되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렸고 인도까지 진출하였으며 헬레니즘 세계의 토대를 쌓은 인물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도시국가들에게 자신을 신으로 대접하라는 명령문을 내렸다.

만약 그가 신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그저 신이라고 불러주는 수밖에. 스파르타의 다미스가 이렇게 말을 하였다.

 

고대사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즉위하기 이전부터 군사적인 측면이서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다. 그가 즉위한 후 어린 왕이 즉위하자 그리스 국가 중 하나인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로스는 직접 군사를 끌고 나가 테베를 소멸시켜 버렸다. 이후에도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다. 이집트를 정복하여 알렉사드로스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한 후 그 나라의 수학, 과학 기술을 받아드려 흡수하였다. 또한 이민족들에 대한 포용정책 등으로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헬레니즘 문화라고 한다. 

 

페르시아 원정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이끌고 헬레스폰트를 건넜다. 아나톨리아와 발칸 바도를 가르는 좁은 해협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상륙하자 그 지방의 페르시아 지방관이었던 스피트리다테스와 아르시테스가 군대를 이끌고 젤레리아에 집결했다. 페르시아와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그라니코스 강에서 조우했다. 페르시아군을 강을 사이에 두고 포진하여 알렉산드로스의 진격을 저지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는 밤에 강의 상류 지역을 올라 건너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냥 바로 기병대로 강을 건너 공격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렇게 무지성으로 공격할 것이라 생각 못했던 페르시아 군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스피트리다테스의 도끼가 알렉산드로스의 투구를 쪼갰지만 알렉산드로스를 막을 순 없었다. 과연 강을 건너 공격을 감행한 알렉산드로스의 전략이 고도의 심리전이었는지 아니면 강자의 여유로 강이 있어도 모두를 뭉개버릴 수 있는 자신감인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 그라니코스 강 전투의 승리로 페르시아인들은 죽거나 도망갔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서북 지역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이후에도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거침없이 남하하였고 페르시아를 정복하였다.

 

이후에도 수많은 업적이 있다.

이소스 전투, 시리아 정복, 이집트 정복, 가우가멜라 전투, 페르세폴리스 점령과 다리우스 추격, 인도 정벌 등이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사망

이토록 대단한 인물이 왜 죽었을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연인이자 오랜 친구이며 심복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이 있었다. 하지만 헤파이스티온은 갑작스럽게 급사해버리고 만다.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매우 큰 상실감과 좌절감에 빠지고 만다. 그를 기리기 위해 엄청난 기념물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헤파이스티온 죽음 때 곁에 없던 담당 의사를 태만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이후 콧사이오이 부족을 정벌했을 때 스트레스 해소로 부족의 장정들을 모조리 목을 베어 학살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해군 제독이었던 네아르코스와 파티를 하며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 그 뒤에 알렉산드로스는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고 고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1주일 후 알렉산드로스는 말 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다음 날 알렉산드로스의 건강 상에 문제가 있다고 소문을 들은 마케도니아 군인들은 알렉산드로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중 지위가 높은 몇 명만이 알렉산드로스를 만났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그저 손을 들어 그들을 반길 뿐 다른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알렉산드로스는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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