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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진시황의 그는 왜 죽었나?

진시황 그는 누구인가?

진나라의  6대 왕 진시황 그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했다. 스스로를 첫 번째라는 뜻으로 시황제라고 칭했다. 진나라의 첫 황제라는 뜻으로 진시황제라고 불린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시기에 강력한 법치로 나라를 통치했고 연, 조, 위, 제, 한, 초 6국을 멸망시켜 통일 시켰다. 큰 위업을 남긴 사람이였고 정말 세상의 왕이었다. 이런 왕이 과연 죽고 싶어했을까? 진시황 그는 영생을 바래왔다. 영생을 위해 갖은 폭정을 일삼았고 많은 짓을 했지만 결국 영생의 비밀은 풀지 못했다.

 

그리고 통일 후 불과 3년 만에 진이 멸망하고 만다.

 

진시황의 어린 시절

진시황의 아버지는 진나라의 태자가 된 안국군 영주의 서자인 영이인이다. 서자라서 잘 대접을 받지 못했고 장평대전 때 인질로 끌려가기 까지 했다. 그 러던 중 여불위의 주목을 끌어 후원을 받으며 안국군의 정부 화양부인을 포섭해 안국군의 후계자가 되기로 약속받는다. 여불위의 집에서 조희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정' 즉 시황제이다.

 

정이 3살 때 소양왕 영직이 장군 왕의를 보내 장평대전 때 함락시키지 못했던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이에 조나라는 영이인을 죽이려고 했으나 여불위가 큰 뇌물을 먹여 영이인을 구출 해냈다. 정과 조희는 탈출하지 못했지만 조희가 조나라의 호족 집안 출신이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정이 9살 때 증조부 송양왕이 죽고 할아버지가 즉위하자 아버지도 태자가 되었다. 할어버지는 즉위한지 3 일만에 병사하고 아버지가 왕위에 오른다. 그럼으로 정은 태자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도 3년 만에 붕어하고 만다. 그래서 정은 13살에 황제가 된다.

 

진시황은 왜 죽었는가?

진시황의 사인은 수은 중독일까? 지금은 독성이 강한 중금속으로 취급 받는 수은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쇠이지만 액체인 수은이 매우 신기한 물체였다.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진시황이 수은을 먹었다는 등의 카더라 이야기도 많이 전해진다. 진시황이 수은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시황이 수은을 좋아한 것은 사실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진시황의 무덤 내부 바닥은 천하의 지형을 본뜬 모형이 있고 천장에는 천문도를 만들었다. 무덤 안에는 수은이 흐르는 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진시황이 수은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1974년 무덤이 발굴될 되기전에는 사기에 나오는 수은에 관한 기록을 그저 소설 취급만 했다. 하지만 1981년 실시한 토양검사에서 수은이 일반 토양의 함유량보다 100배 가까이 높은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수은을 가까이하다 수은의 중독에 걸렸을 수도 있다.

 

진시황은 열사병에 죽었다? 진시황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적으로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는 모든 일을 자기가 처리해야하는 완벽주의라 하루 온종일 문서처리를 한다고 피로가 극에 달해있었다. 하지만 불사의 비법을 찾기 위해 9개월간의 긴 여행을 떠났다. 그렇지만 여행길은 그렇게 편안하지 못했다. 당시 도로는 비포장도로 만도 못한 길이 대부분이였고 수레는 온량거러 수레 위에 커다란 가마를 올린 형태의 수레를 탔는데 창문이 작아 더위에 취약했다. 또한 왕의 옷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가 안에서도 왕의 위엄 때문에 벗고 있을 수 없다. 여행은 무더운 여름에도 계속 되었고 창문이 작은 수레 안은 불가마가 되어 진시황의 숨을 조여왔을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황제에게 당신은 죽어 가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기에 그는 더위 먹어 죽었다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시황은 자신의 죽음을 숨겼기 때문에 진시황이 왜 죽었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왜 죽었지 궁금증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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